신리성지 - 당진신리다블뤼주교유적지 English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 / 당진시 합덕읍 신리 63-1외 3필지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이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면서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사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수집하였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또한,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 로 불리고 있다. 다블뤼 주교가 신리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발달된 삽교천 수계를 통해 중국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었던 점과 내포지방의 문화적 개방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Dangjin Shin-ri St. Daveluy Historic Site
Chungcheongnam-do Monument No. 176 / 63-1 Shin-ri, Hapdeok-eup, Dangjin-city
Shin-ri sacred place is where St. Daveluy, the 5th bishop of Joseon diocese resided. He performed his pastoral ministry in Korea for 21 years from October 1845 when he arrived in Gang-gyeong with St. Andrew Kim until his martyrdom at Galmemot in 1866. St. Daveluy secluded in the house of St. Thomas Son Ja-seon, who was the local Catholic leader. Here, St. Daveluy wrote Catholic books and translated foreign Catholic books into Korean with the help of St. Luke Hwang Seok-doo. He also collected documents on the history of Joseon Catholic Church and information about Korean martyrs’ activities. His collections contributed for Dallet to write “Histoire de l’Église de Coree”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 Church) and played a decesive role in the canonization of 103 saints. Shin-ri sacred place is also one of the important Catholic villages during the persecution. It was the larges Catholic village in Korea and a refuge for foreign missionaries. For it was a crucial place for the evangelization in Korea, this place is called Korean Catacomb. St. Develuy could perform this pastoral mission here since he could exchange information with “Paris Foreign Mission Society” in China through the advanced water system of Sap-gyo-cheon as well as the Naepo province had cultural openness.
신리성지는 조선천주교회의 요람이다.
충청도 내포지방의 중심부에 자리한 신리는 한국천주교회 초기부터 끊임없이 예비자, 신자, 순교자가 배출되었다. 성지 내 초가집은 손자선(손도마, 1866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 성인의 생가이다. 동시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안주교, 1866 오천 갈매못에서 순교)의 주교관이자 조선 교구청이었다. 안주교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찾아드는 교우들에게 성사를 베풀고 신앙 진리를 가르치는 한편,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리나 초창기의 한글 교리서 저술과 간행, 조선교회의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 정리하여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는 일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들이 훗날 한국천주교회사와 순교사의 토대가 된 이른바 '다블뤼 비망기'이다.
본디 “천주강생 1815년”에 지어진 생가는 박해시대 이래로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고 그 구조 또한 개조를 더듭해 왔다. 1964년부터는 강당의 형태로 개축되어 공소로 사용되었으나 본당 중심의 사목이 강화되면서 방치되기에 이른다. 이후 성지개발이 본격화 되고 한국교회사연구소로부터 생가의 옛 사진이 발견됨에 따라 원형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2004년 마침내 손 성인의 생가이자 안주교께서 사시던 주교관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복원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날 그대로이다.
대들보, 서까래,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 집 지은 연도를 적은 상량문 등 상당 부분의 실물들이 그대로 사용되어 성인들의 숨결과 손 때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리성지는 순교자들이 태어난 집과 마을, 거닐던 길 그리고 경작하던 농토도 그 지명들과 함께 그대로 유지되어 순교자들의 자취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특히 손자선 성인의 생가와 함께 안주교와 오신부, 민신부 그리고 황석두 루가 등 성인 네 분이 붙잡힌 ‘거더리’의 집(신리 99번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해 준다.
신리성지는 이처럼 순교자들의 고향인 동시에 순교자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손자선 성인의 순교 이후 그 시신이 신리의 선산에 묻혔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져 있는 33분의 순교자 외에도 성지 인근에는 ‘32기의 목이 없는 무명 순교자 묘’와 ‘14기의 손씨 가족 무명 순교자묘’, 그리고 해미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는 묘 3기가 있다. 이 묘들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연차적으로 발굴되어 대전리 공동묘지에 초라하게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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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 주소
- 신리성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자가용이용
- 대전-당진고속도로 고덕 나들목을 지나 사거리에서 좌회전 후 계속 직진, 619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6km 전방 삼거리에서 신촌 초등학교방면으로 우회전 후 계속 직진하면 1.3km 전방이 목적지다.
주소 및 연락처
주소 :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전화번호 : 041-383-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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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master@sinri.or.kr
홈페이지 : sin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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